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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정세

남북관계와 북한정세를 심층 분석합니다.
북한의 공간문헌과 정보를 분석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책방안을 제안합니다.


김명성 SAND연구소 사무국장



美 "월북 미군 생사·소재 아직 몰라... 과거 월북 미군들 '고문'당하고 정신교육 받아 



지난 7월 18일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이 판문점 견학 중 무단으로 공동경비구역(JSA)을 넘어 월북했다. 트래비스가 월북한지 열흘이 넘었지만 여전히 생사조차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킹 이등병의 지난 18일 월북 장면은 JSA에 설치된 한국측 CCTV 등에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당국은 킹 이등병이 월북 직후 체포돼 JSA 북측 통일각으로 이송되고 차량에 태워지는 모습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킹 이등병은 평양으로 압송돼 월북 경위 등을 조사받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월북한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상병. (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유엔군사령부(UNC)는 북한과 그의 신병과 관련한 대화를 시작했다고 지난 7월 24일 공식 확인했다. 앤드루 해리슨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은 이날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앞두고 외신을 대상으로 진행한 브리핑에서 "정전협정 하에 수립된 장치를 통해 (킹 이등병 관련) 북한군과 대화가 개시됐다"고 밝혔다.북한군과 전화통화를 개시한 유엔사는 우선 킹 이등병의 건강 상태와 소재 등 구체적인 신병 정보를 파악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내외 매체를 불문하고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담화나 성명도 내놓지 않은 채 열흘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북한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적인 사건이어서 어떻게 대응할지 여전히 고심하고 있을 수도 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모습


한국에서 폭행 등으로 두 달 가까이 구금됐던 킹은 지난 17일 추가 징계를 받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로 갈 예정이었지만,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달아난 뒤 다음 날 JSA 견학에 참여하던 중 월북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 월북을 선택 했던 다른 미군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군 병사가 자의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그동안 모두 5건의 월북 사례가 있었는데 1962년 5월 월북한 래리 앱셔 일병이 첫 사례다. 같은해 8월 제임스 드레스녹 일병이 상관의 서명을 흉내 내 외출증을 위조했다가 처벌받게 되자 월북을 선택했다. 3년 뒤인 1965년에는 제리 패리시 상병과 찰스 젠킨스 병장이 월북해 이들과 합류했다. 패리시는 개인적 이유로, 젠킨스는 베트남 전쟁에 차출될 것이 두려워 월북했다고 한다. 


북한은 미군 병사들이 서방의 자본주의적 삶을 버리고 사회주의 낙원을 택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1965년 월북 후 2004년 고향으로 돌아간 찰스 젠킨스씨의 회고록 ‘고백’


북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1966년 주북한 소련 대사관을 통해 망명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했고, 결코 북한을 떠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들은 이후 북한 선전영화에서 악역 배우를 맡아 전국적 인지도를 지닌 스타가 됐고, 북한 내 외국어 교육기관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2004년 월북한 미군 병사 중 유일하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젠킨스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미국인들은 (북한에서의) 첫 몇 년의 상당 부분을 자아비판으로 보냈으며, 하루 10시간 넘게 김일성의 지독하게도 지루한 가르침(주체사상)을 강제로 배워야 했다"고 밝혔다. 


월북한 미군들은 북한이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서 납치한 여성들과 강제로 결혼했다.젠킨스의 부인인 소가 히토미도 1978년 일본에서 납치된 여성이다. 앱셔와 패리시는 1983년과 1998년 병사했고, 드레스녹도 북한에서 201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정착한 젠킨스는 2017년 노환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8일 월북한 트래비스 역시 미국 귀국 후 징계를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과거 월북한 미군 병사들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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