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0월 10일 새벽(0~3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석 하에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진행했다. 북한이 새벽 시간에 열병식을 진행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심야 시간대에 열병식을 진행한 의도는 무엇일가? 북한이 공개한 열병식 영상을 보면 이번 행사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어둠속의 빛’을 강조한 시공간적 무대장치로 보인다. 화려한 LED 조명과 주석단의 하얀 대리석 기둥, 금빛 국장, 장식들이 마치도 중세 유럽의 궁전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김정은식 ‘빛의 정치’를 선보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둠속 빛’은 미래의 희망과 꿈을 의미하지만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속임수단이기도 하다.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 거의 해마다 심야에 대동강 수상 ‘불꽃쇼’로 정치효과를 극대화했다. 심리적으로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어둠 속의 빛’은 현실의 암흑을 잊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매력이 있다.
이번 열병식 행사에서 그 기대와 ‘잔상효과’의 중심 포인트는 연설하는 김정은의 모습이었다. 김정은의 단상 앞면과 뒷면 벽에 황금색 공화국 국장이 새겨졌고 김정은은 마치 국장의 황금빛과 하나가 된 듯 조명속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위대한 영광의 밤”을 강조하면서도 노동당이 거둔 “경제성과”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대북 제재’, ‘코로나19 방역’, ‘홍수’ 같은 자연재해 등 3중고와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에게 “고맙다”“면목없다”는 표현을 연발했다. 또 연설 도중 울먹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북한은 이런 경제실패를 딛고 내년 1월 열리는 노동당 제8차대회에 내놓을 경제성과 마련을 위해 올 연말까지 ‘80일 전투’를 진행한다. 낮과 밤을 이어가는 전투적 분위기를 조성해 주민 결속을 다지고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복구를 완성하는 한편 경제성과도 창출하는 1석 3조의 효과를 얻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연속 언급한 ‘영광의 밤’은 새벽이 아닌 심야를 말한다. ‘영광의 밤’을 넘어 연말까지 ‘80일간’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아가면 내년 1월 열리는 8차 노동당 대회 때는 새벽이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이다. 결국 심야 열병식은 경제 실정(失政)을 화려한 불빛으로 감추기 위한 ‘계획된 쇼’라고 볼 수 있다.
또 심야에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처럼 보이나, 사실 북한 노동당의 결정에 따른 1950년 ‘6.25전쟁’도 새벽 4시에 침공을 개시했다. 이번 열병식도 시간대로 본다면 서울에는 섬찍한 메세지를 주고 워싱턴에는 오후 3시경이라는 가장 평온한 시간을 제공했다. 미국 전역을 타격 가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무력’과 남한에 대한 정밀 공격능력이 증대된 ‘신종4종무기세트’를 공개하고 이번 당 창건 75주년의 핵심 성과로 내세은 것은 이런 추정을 가능케 한다.
이번 당창건 기념식은 당·국가 관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김정은의 연설 전에 노래 ‘빛나는 조국’이 흐르는 가운데 21세기를 상징하는 21발의 예포를 발사했고 연설 후에는 노래 ‘우리의 국가’가 흘러나오면서 공화국기를 게양했다. 당창건 기념일인데 국가 주악을 올리며 공화국기를 게양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물론 사면에 노동당기로 장식되었지만, 그 중심엔 국장이 있었고 높은 위치에는 국기가 날렸다.
이는 북한의 보통국가에로 지향을 의미하는 상징적으로 함축한 장면이다. 김정은의 연설은 마치 공화국창건 기념일에 프레지던트 김정은이 연설하는 모습을 연상케했다. 이는 김정은의 호칭이 ‘최고 영도자’에서 ‘위대한 영도자’로 변경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로써 대내외적 사업 전반을 국가가 주관하면서 노동당은 대내적 역할에 한정하도록 했다. 이번 행사에서 노동당의 연단은 유럽의 왕실 귀족행사를 방불케 해 노동당이 혈통세습의 귀족당으로 전락한 모양새를 여실히 드러냈다.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것과 실제로 보통국가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얼마나 나라 안이 어려움을 겪고 인민들이 활기가 없었으면 불빛쇼를 통한 신선한 역동성 연출에 집착했을가? 본질적인 변화가 없이 수단만 바꾼다고 변화로 볼 수 있을가? 빛을 통한 착시현상과 착각의 속임수로 본질을 보려는 인민의 눈과 귀를 또 막고 있는 것이다.
빛의 주인공이 잔상효과에 여운과 쾌거를 느낄 때 인민의 고통은 더 깊어져갈 것이다. 김정은이 이날 연설에서 언급했듯이 이 시각에도 군인들과 인민들은 폭풍 피해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다. 가상의 빛으로 현실을 잠깐 잊게 한들 얼마만한 변화가 있을 것이며 빛에 속아 기대하며 따라가는 인민들은 또 얼마나 불쌍한가. 지도자가 정치를 잘 못해 인민이 겪는 75년의 고통을 불빛쇼로 잠시 잊게 해줄순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3대째 인민에 약속만 하고 못 이룬 ‘인민생활 향상 ‘선언, 더 이상 말로만 ‘면목없다’는 얘길 할 것이 아니라 물러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