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체제의 해체 이후 21세기 들어 동북아에서는 3차원의 세력전이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우선, 세계적 차원에서는 미중 간 세력전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급격히 약화되고 중국의 부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및 A2AD 구상이 거세게 부딪치고 있다. 다음으로 지역적인 차원에서 중국과 일본 간에 세력전이가 진행되고 있다. 중일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고, 미일동맹은 강화되고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추진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이미 남북한 간의 세력전이가 진전되어 북한은 정치, 경제, 통상 군사력 측면에서 한국에 도저히 견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은 핵개발로 맞서면서, 남북관계는 갈등이 계속 고조되어 왔다. 세력전이는 결국 당사국들 간에 갈등과 긴장을 불러오고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있다.
한반도는 이러한 3중의 세력전이 현상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그 갈등과 대립은 복잡한 양상을 띠면서 전개되고 있다.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 간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남북한 간에도 세력과 상황의 차이로 말미암아 남북문제를 한반도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에 합의하기 어렵고 이해관계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세력전이가 초래하는 긴장과 갈등의 영향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하면서 생존을 구가하고, 국가이익과 목표를 증진시키는가가 중요한 외교안보적인 도전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한국에 사드배치 문제는 이러한 세력전이 상황의 갈등을 본격적으로 한국에 끌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는 크게 북핵 실험 3차와 4차 이후로 대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제3차 핵실험 이후 정부의 정책기조는 이명박 정부의 맹미·견중·억북(盟美牽中抑北) 정책에서 벗어나 연미·화중·포북(聯美和中包北)을 추진한 것이었다. 미국과의 동맹을 잘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잘 개선해나가고, 양국의 이해를 동시에 고려하는 정책의 채택이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북한을 주변국들과 분리해내어 포위하는 형국을 취하면서 동시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북한을 포용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이 시기 우리의 대외정책 기조는 일방으로 지나치게 경도되는 상황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간 AIIB 문제나 사드배치 문제에 있어서도 이 기조를 잘 유지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2016년 1월 6일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일주일 뒤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도입 검토 발언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현재의 기조는 맹미·견중·압북(盟美牽中壓北)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이해를 지원하면서, 미국의 힘을 빌려 중국의 행태를 변화시키고, 북한 체제를 전복하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 핵실험 당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반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였다. 3차 핵실험 때와 마찬가지로 핵확산을 방지(防止)한다는 보다 행동지향적인 언명(1~2차 실험 직후에는 핵확산을 반대(反對)한다는 표현을 사용)을 분명히 하였다. 차이점은 각 측이 냉정을 유지하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구절을 빼고, 중국은 미래에도 비핵화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여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은 제4차 북핵 실험 국면에서는 3차 핵실험 때와는 달리 대단히 신중하고 보수적인 행보를 보였다. 시 주석의 신중한 행보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고려요인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중 관계의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어 가는 국면이라 북한의 전략적 존재감이 커져가는 상황이다. 둘째, 최근 한일관계 개선 및 한미일 협력 추진의 강화 움직임을 고려한 것이었다. 셋째, 북한의 핵실험으로 야기된 정국에서 변수 증가로 인해 불확실성과 위험 부담이 많아 국내에서 보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넷째, 중국 내 군부개혁과 경제문제도 중요한 변수였다.
북핵 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배치 문제 제기(2016.1.13), 한민구 국방장관의 사드 수용검토 발언(2016.1.25.)을 통해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에 편승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중국은 한·미간 2016년 2월 7일 사드의 한국 내 배치 협의 결정에 대해 즉각 김장수 주중대사를 초치하는 등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동시에 당일 환구시보는 한국의 사드배치가 현실화되면 상응한 군사조치를 취할 것임을 언급하여, 최초로 한국의 이익에 위배되는 군사행동의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수위를 높였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2월 12일 독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미중 외교장관 회담을 가지고, 한반도 정세를 명분으로 중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심지어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항장이 칼춤을 추는 것은 그 뜻이 유방에 있다(項莊舞劍 意在沛公, 司馬昭之心 路人階知)”라는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여 미국이 사드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미국 측에 한국에 사드를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 재고를 요청하였다. 동시에 중국은 이에 대한 대응조치를 분명히 할 것임을 확인하였다.
한국 땅에 사드를 배치하는 문제에 대해 중국이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크게 다섯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사드에 대한 정확한 의미나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냉전적인 사고에 입각해 한국에 미군의 전력과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다. 둘째는 군사 기술적 위협 때문이다. 백두산 배후에 위치한 중국 미사일 부대에 대한 사드 레이더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추후 추가적으로 사드 레이더가 더 배치된다면 베이징이나 상하이 주변의 주요 군사기지에 대해서도 이러한 운용이 가능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셋째는 한미동맹이 지역동맹화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에 한국이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신호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미국의 운용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중국은 그간 중국의 미사일 등을 탐지할 수 있는 한국의 레이더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시비를 걸어오지 않았다. 이번 사드배치에 문제가 되는 것은 미국이 미중 전략경쟁에 사드를 활용하면서 이를 운용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사드가 미중 간 대만이나 다른 지역에서 군사 충돌시, 중국의 단·중거리 미사일로 주한미군을 볼모화 할 수단을 크게 제약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현재 중국은 군부 개혁 및 군사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사드 문제는 중국 군부의 입장에서 지도부의 관심과 군사비 증액을 가져올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사드에 대한 반발 강도는 아마도 역순 요인으로 중요할 것이다.
문제는 시진핑 시기가 후진타오 시기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시진핑 시기 중국은 강대국으로서 자아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가의 위신을 고려하고, 국제적 책임감은 높이되, 자신들의 중대이익 혹은 핵심이익은 반드시 지켜내고, 자신들의 이익을 헤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대응을 분명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 일각에서 논의되는 ‘중국 공갈론’은 우리의 기대이며, 실제는 공갈에 그치지 않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가 중국에 근접하여 있고, 북한 문제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칠 국가가 중국이면서, 현실적으로 우리 무역의 25%를 차지하고 있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국가가 바로 중국이라는 점이다.
현재까지 나온 중국의 전략이나 태도로 볼 때, 중국은 북핵문제로 한국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동북아에 신 냉전구도의 형성도 희망하지 않고 있다. 다만, 한국이 도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응전을 하겠다는 생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중국은 당장은 한국에 대한 공식적인 경제 제재나 어떤 보복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중 국경지대에서 미국의 사드배치에 대해 대응하는 군사조치를 강화할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방공망의 강화와 추가적인 군사역량의 배치일 것이다. 이는 유사시 한미가 북한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는 공군력과 탄도미사일의 효용을 크게 제약할 수 있다. 중국은 상황의 진전에 따라 점차 경제적 카드 등 자신들의 카드를 보일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저강도 조치라도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보복을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호기로운 모습이 당장은 우리의 감성을 위로할 수 있지만, 지도자나 전략가는 중국과 갈등 시 반드시 출혈을 감당할 출구전략을 고려하고 대응해야 한다. 최상의 방법은 갈등하지 않고,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상호 눈높이를 맞춰, 중국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21세기의 한반도 및 국제 환경의 본질에 대한 이해, 향후 어떻게 한국이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원칙과 비전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실제 위협 평가, 사드 배치의 합당성 문제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우선되어야 하며, 여기서 빵과 대포의 황금비율에 대한 고민이 보다 진지하게 있어야 한다. 향후 중국의 부상 및 변화하는 미중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은 아마도 우리에게 사활적인 중요성을 지닐 것이다. 매 선택의 결과로 나타날 이점과 기회비용을 포함한 비용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사드 배치 논쟁으로 동북아 국제정치에 3차원적 대립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 상황은 우리 정부가 희망하는 북 vs. 5자의 구도가 아니며, 혹은 일부 언론에서 우려하는 북중러 vs.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도 아니다. 과거와 차별적으로 한미일 vs. 중러 vs. 북의 3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서 관건은 중러를 어느 쪽으로 이끌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익은 북핵 실험 국면을 미중 전략 경쟁의 국면에서 탈출시켜, 북한에 대한 재제에 집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한중관계가 나락으로 급전직하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을 다 같이 고려하고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지정학적 이해와 국력에 부합한다. 당위나 도덕의 관점이 아닌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한·미·중 삼자의 이익을 맞추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드 논란과 배치는 한·미·중 대립의 사안이 아닌 협력의 사안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강이기 때문에 미국을 통해 성동격서(聲東擊西)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고, 득보다 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개연성이 높다.
사드 배치 문제는 미중이 우선적으로 전략 대화를 통해 다루게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한국의 안보적 우려를 충분히 전달하고, 미중 대립이 아닌 협력 사안이 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은 이미 사드문제로 미중, 한중, 한러 간 관계를 갈등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배치 이후에도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게 하면서도 실제로는 북한을 위협하지 못해 북한이 결국 선택권을 갖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사드 도입시, 최대의 수혜자는 북한일 것이다. 사드 논쟁과 배치가 북한이 희망하는 프레임(frame) 속에서 진행된다면 한국은 강대국 정치, 북한의 농간, 신 냉전질서의 도래, 탐욕스런 국제 자본의 탐닉대상으로 전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