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天津外國語大學校 姜龍範(Jiang longfan)
한·중·일은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에 있으며, 동아시아3국이라 일컬어진다. 한중일의 관계는 뗄 수 없는 긴밀한 것이며, 한·중·일 3국은 아시아의 중심국가라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중·한관계, 중·일관계 뿐만 아니라 한·일관계에 대해서도 매우 관심이 크다. 그 이유는 한·일관계가 중·일관계, 중·한관계 뿐만 아니라 아시아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과 일본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는 중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를 전제로 중국의 시각에서 한일관계를 정리한 후, 중국의 관점에서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대해 약간의 전망과 제언을 하고자 한다.
Ⅰ. 문제의 제기
한일관계는 특수한 양자관계이다. 과거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관계를 탈피하여 대등한 국가관계를 수립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침략과 피침략의 관계를 극복하고 호혜적인 대등한 관계를 수립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일관계와 중·일관계는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입장에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 피침략이라는 면에서는 정서적, 현실적 유사점이 강조되고 있으나, 호혜적인 관계 수립이라는 점에서는 다소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한일 양국은 수교 후에도 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역사문제와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소원(疏遠)과 복원을 반복하고 있다. 수교 후 거의 20년이 되어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1983년 나카소네 수상 방한, 1984년 전두환 대통령 방일)이 실현되었으며,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는 지금까지도 갈등을 노출하고 있다.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특별담화’(2006.4.25)에서 보듯이, 독도문제를 식민지 침략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고이즈미 수상이 “한국이 자신 있으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자”라는 강경 발언이 상징하듯이 단순한 영유권 문제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양국 간의 관계를 상징한다. 같은 맥락에서 식민지 지배문제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군위안부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의 정권 교체와 일본의 수상교체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면서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 내의 반일 감정과 일본 내의 반한 감정이 엉키면서 양국 간의 갈등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일관계에는 미국의 관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전후 70여 년간, 미국은 한일 양국 간의 조정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한일 수교 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주지의 사실이며, 2015년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에도 미국의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2016년 11월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에도 미국의 작용이 있었다. 한일 양국은 2014년 체결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을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정보 등 군사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보 공유 범위가 북핵과 미사일 정보에 국한되고, 정보 공유가 반드시 미국을 매개로 해서 이뤄져야 하며,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 등의 이유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효율적인 정보공유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한일간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추진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한일 간의 민감한 사안에 직접 개입하거나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의 역할을 ‘혼인 중개자’로 묘사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한·일관계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독립 국가 간의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미국을 매개로 한 ‘한·미·일 3국 관계’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미·중 ‘신냉전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한국 · 일본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국가들과 반중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2023년 8월 한·미·일 3국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의 정례화와 조기 경보 체제 정보 공유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동맹관계가 아닌 한국과 일본이 준군사동맹 관계로 격상되는 효과를 가진다. 이 협정은 표면적으로는 북한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 협정이 실질적으로는 군사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한국과 일본의 대만문제 개입을 용이하게 하려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중관계를 악화시킨 2016년 한국의 싸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문제 역시 이와 유사하다. 북한을 겨냥한 한국과 미국의 싸드 운용이 중국의 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중국의 우려가 한중관계를 경직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군사협력체제의 강화로 한일관계도 급속히 개선되고 있으며, 윤석열 정부는 이를 최대 외교업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2024년 8월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 정상이 바뀌어도 한·미·일 캠프데이비드협정의 효력이 유지될 것이며, 한·미·일 협력체계가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굳건하다”고 강조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러나, 모두(冒頭)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식민지지배문제(역사인식문제) 해결없이 “한·일 협력체계가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굳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또 현실적으로 일본 사회의 보수화, 정권교체와 함께 대일정책 기조가 바뀌는 한국의 정치환경은, 한일관계의 불안 요인이다. 2012년 보수적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권하면서 한국에 대한 과거사를 부정하고,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면서 위안부합의를 거의 사문화한 것은 좋은 예이다. 비록 일본 새 총리에 한일 역사인식 ‘비둘기파’ 이시바 시게루가 부임했지만, 일본의 미래 세대를 위해 더 이상 사과하지 않는다는 아베 전 총리의 ‘유훈’이 일본인의 마음과 뇌리에 있는 만큼 권력 기반이 취약한 이시바 총리가 일본 내 반발을 우려해 쉽게 한국에 호응하는 행보를 취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요컨대 일본의 대한국 전략은 과거사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고, 한국의 대일외교는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안보, 경제, 지역 및 글로벌 차원에서의 포괄적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심화하고 있는 미·중의 경쟁과 대립 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한일협력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중국을 배제하거나 견제하기 위한 한·일관계의 강화가 미·중관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이며, 중·한관계 및 중·일관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할 것이다.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의 해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준비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고, 민간에서도 양국의 교류·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새로운 한일 공동선언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한일파트너십 2.0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그 내용이 어떻게 구성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중국도 역시 관심이 크다.
Ⅱ. 중국에서 본 한일 갈등의 현황과 쟁점
1965한일수교 이후 한일관계는 많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2002년에는 월드컵을 공동 개최할 정도로 양국 관계는 밀접해졌다. 그러나 여기에는 양국관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불안 요인이 내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65년 6월, 한일 양국은 14년 간의 마라톤 회담을 통해 「한일관계기본조약」에 서명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세계외교사상 가장 긴 협상이었다고 한다. 이는 양국관계의 정상화에 얼마나 많은 복잡하고 어려운 요소가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독도(영토)문제와 과거사(식민지지배)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다. 이 문제는 결국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정치 외교적으로 국교정성화는 이루어졌지만, 양국 국민 사이의 정서적, 감정적 갈등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에는 실패한 것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보다 늦게 1972년 중일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일본에 대해 전쟁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고,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는 다음세대로 미루었다. 때문에 댜오위다오 문제는 지금 현재화하고 있으며, 양국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일관계에서 우선 검토의 대상은 독도문제이다. 한국은 독도를 고유영토이며, 역사적, 국제법적, 지리적으로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다케시마’는 고유영토이며 근대 국제법적 영토취득 이론에 의해 획득한 영토라고 주장한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2005년 3월 16일,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규정하는 조례안을 제정했다. 여기에는 중앙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은 2006년 4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담화'를 통해 “독도는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침략의 희생물이며 주권 확립의 문제”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이처럼 독도문제는 영토문제이며 국가적 아이덴티티의 문제이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는 땅이 넓지만 한 치의 땅도 버릴 수 없다”고 말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독도문제는 언제나 부상할 수 있는 휘발성 강한 문제로 양국관계의 잠재된 불안정요인이다.
독도문제에 대해 중국은 한국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중국 최대의 포털사이트인 바이두(Baidu, https://baike.baidu.com/)에서 독도(独岛, dudao)를 검색하면 ‘바이두백과(Baidu百科)’에서 한국의 주장에 가까운 기술을 하고 있다. 반면에 다케시마(竹島, Takesima)를 검색하면 다케시마로는 검색이 안되고, 바로 독도 소개 사이트로 연동되어 넘어가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댜오위다오문제와의 관련성 때문일 것이다. 댜오위다오는 청일전쟁 중에, 독도는 러일전쟁 중에 일본의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즉 전쟁이라는 위기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은 자국의 영토를 침탈당했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는 한·중 국민의 대일인식과 정서의 공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한·중관계에서 매우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한일 간의 식민지지배 문제는 뿌리가 깊고, 그 가운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문제가 가장 민감한 이슈로 생각된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권에서 양국은 반세기 동안 지속된 '위안부 문제'를 전격적으로 타결하였다. 이른바 위안부합의이다. 하지만 정권 교체 후 문재인 정권은 사실상 '위안부 합의'를 사문화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다시 부상했다.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문제와 함께 여성인권의 문제로 지속적으로 향후 한일관계의 불확실성을 야기할 것이다. 중국도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안고 있으나, 한국만큼 치열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남경대학살이나 731부대의 만행 등에 대해 관심이 높고 자료 발굴 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의 복원을 위해 제시한 강제징용 피해 배상금 제3자 변제안을 둘러싼 논란도 중국에서는 관심거리이다. 일본기업이 부담해야 할 배상금을 한국정부가 부담한다는 인상을 주고, 일본을 두둔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 문제가 한국에서 국내정치에서 쟁점화되고 있는 이유이다.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제3자배상으로 강제징용배상 문제가 양국 정부 간의 현안에서는 사라질지 모르나, 이것을 한국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수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만약에 한국 국민들의 정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부간의 관계는 좋아지겠지만 일본에 대한 한국민의 정서는 오히려 악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즉 정부와 국민의 대일 감정이 불일치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제3자배상안은 한일관계의 불안정요인으로 계속 잠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2015년의 위안부합의와 같은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다.
다음으로 한일 간의 경제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2019년 7월 1일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였다. 일본은 수출 규제 강화의 이유를 안보상 한국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수출된 소재가 북한이나 중국으로 유출되어 군사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였으나,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일본의 이러한 조치의 배경에는 한국 대법원이 2018년 12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위자료 지급 판결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를 경제적으로 성장하여 일본을 추격 또는 능가하려는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다. No Japan이 확산되면서 반일분위기와 함께 한일관계는 악화되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2012년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 문제로 충돌을 빚자 중국이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사건을 연상키는 경향이 강하다. 즉 당시 중국의 조처는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에 대한 항의와 함께 일본에게 중국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 같다.
그러나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조처에는 댜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주권침해와 선장 억류에 대한 응전이라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도 쉬웠고 단기간에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매우 애매한 양국의 잠재된 요인, 즉 식민지 지배문제와 한국의 성장에 대한 일본의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양국의 인식의 갭이 컸을 뿐만 아니라 해결도 장기화되면서 양국관계를 악화시켰다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최근 중일관계는 이슈별 대응이 주된 흐름이나, 한·일관계는 여전히 식민지지배문제에 대한 인식의 갭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한·일관계와 중·일관계의 두드러진 차이인 것 같다.
Ⅲ. 한일 갈등의 배경
한일 갈등의 배경으로 양국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결국 국가 간의 관계는 상호작용하는 힘의 관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한일 양국의 역학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 상징하듯이, 장기간 경제적 침체를 겪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IMF의 보고에 의하면 2023년에 한국은 PPP기준 1인당 GDP에서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 종래의 한‧일 간의 힘의 관계가 역전되거나 그 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이는 근대 이후 처음 겪는 한‧일 간의 근본적인 역학관계의 변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를 배경으로 한‧일 관계 및 국민들의 의식은, 과거 비대칭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던 협력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1990년대 이후 위안부문제와 강제징용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과거사에 대해 일본에 대등하게 논의할 정도로 한국의 입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은 과거의 한일관계에 구속되어 이러한 한국의 입장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적 자세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현실 인식의 차이가 양국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한일 갈등은, 일본이 과거에 대한 잔상(殘像)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한일간의 역학관계의 변화를 반영한 양국관계를 요구하는데 따른 충돌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근대 이후 형성된 아시아의 힘의 중심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동(power transition)한 것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즉 한국은 과거에 지속되었던 일본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외교 정책을 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양국의 현실 인식의 갭을 어떻게 용해해 갈 것인가가 한일 양국의 새로운 관계설정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지정학적 변화이다. 냉전 체제의 수익자라로 불리는 일본에서는 종래의 국제 질서를 계속 유지하려는 요구가 강하고, 이에 반해 한국은 오랜 세월 냉전의 최전선에서 겪은 피로감을 벗어나 남북의 긴장 완화, 중·러 등과의 관계 발전으로 새로운 국제질서를 모색하려는 의욕이 강해지고 있다.
냉전체제하에서 미일 관계를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질서에서 한국은 미일관계의 하위(下位)에 위치하는 종속변수로서 경제, 군사적으로 일본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 러시아 등을 포함한 다자주의적 국가관계를 정립할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성장과 냉전체제의 해체로 한국 전체 외교에서 일본의 비중이 다소 약화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Ⅳ. 중국이 본 한일관계에 대한 전망
첫째, 최근 출범한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정권이 소수 여당이라는 불안정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왜냐하면 한·일 관계 개선은 일본 내에서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보수정권이 지속되는 한, 한일 간의 협력은 더욱 끈끈해질 것이다.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양국은 ‘한·일 화해 재단’ 설립과 김대중·오부치 한일공동선언에 이은 ‘신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현재의 흐름에서 본다면 성립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신선언’이 ‘신냉전’을 심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중국의 우려가 있다. 신선언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고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둘째, 트럼프 2기 행정부 외교안보라인이 대중국 강경파로 채워지고 있다. 국무장관 루비오, 국가안보보좌관 왈츠는 미국내에서 극단적인 ‘반중’인사로 알려져 있다. 향후 미국은 중국 견제를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삼을 것이다. 과거 이들이 한·미, 미·일 동맹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던 것을 감안하면 향후 한·일, 한·미·일 안보 협력이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예상된다. 특히 이른바 ‘중국 위협론’이 커질수록 한국과 일본이 더욱 긴밀히 협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강화가 중국위협론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하는 것 같다. 덧붙이면, 중국위협론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 실체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그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한 한중일 연구자들 간의 치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중국의 발전과 성장 자체를 ‘위협’이라고 한다면, 이는 매우 단선적인 시각이다. 발전과 성장이 곧 위협이라는 논리가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제국주의시대에서 일본의 성장은 아시아에 대한 위협이었으나, 최근 한국의 성장을 위협이라 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최근 중국이 외교적 모토(motto座右铭)로 삼고 있는 ‘인류운명공동체’론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권하고 싶다.
셋째, 향후 한국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경우, 강제징용 배상문제, 위안부문제, 야스구니 참배 등 식민지지배 문제를 둘러싼 현안들이 한일 양국의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국 내에서도 정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일관계의 근본적인 취약점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한국의 정권교체가 반드시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 대응하는 일본의 자세 여하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지적해두고 싶다.
마지막으로, 최근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와 양국의 경쟁 심화로 동아시아 지역이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일 관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의 산물이다. 동맹조약이 체결된 것도 아니고 군사협력이 명확하게 규정된 것도 아니지만, 미국을 매개로 한일 간에 군사 협력관계가 밀접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농후해지고 있다. 2023년 8월 미 캠프데이비드서 한·미·일 3국 정상이 체결한 협정은 군사, 경제, 기술 등의 분야에서 3자 협의체를 강화하여 실질적으로 한미일 동맹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시각에서 보면, 한·미·일 동맹화는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구상의 한 축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 한국은 미국이 추진하는 동아시아 '신냉전'의 최전선에 있다고 하겠다.
이 점을 중국은 주시하고 있다. 이를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면 아시아의 신냉전구도가 탄력을 받을 것이고, 반대로 중·한·일관계가 강화되면 동아시아의 협력체제가 진전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일관계와 한국의 외교적, 군사적 스탠스는 매우 중요하다. 이미 한국은 북한을 압도하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면 동아시아전체의 균형이 불안정해질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신한일 선언이 비군사적이면서 개방적인 선언이 되기를 희망하고, 중국에 대해 폐쇄적이지 않고, 대립적이지 않은 한일관계의 발전을 기원한다.
-
PREV 북한의 2국가론과 남북관계 전망 : 우크라이나 중동 전쟁 이후 북한 도발 변수 부상
-
NEXT 다음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