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일은 동서독 통일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독일통일 당시 전세계가 충격을 받은 가운데 이를 지켜본 북한 김일성이 받았던 충격은 더 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동독 집권당의 서기였던 에리히 호네커(1912-1994)는 북한의 김일성(1912-1994)과 동갑내기이면서 같은 해에 사망한 절친이다. 김일성이 생전에 동유럽 국가의 수장들 중에 절친이 2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은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챠우세스크이고 다른 한 명은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다.
북한에서는 호네케르라고 부르는데, 호네커는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로 1989년 10월 18년 간 집권했던 당서기 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한달만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호네커는 모스크바 망명을 위해 동독 주둔 소련군병원에 입원했다가 곧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호네커가 집권했던 사회주의통일당은 12월 3일 호네커를 제명하고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던 동독 시민에 즉시 처형을 명령한 혐의로 기소, 피신해 있는 호네커의 신병을 소련 정부에 요구했다.
한편 1991년 12월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러시아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호네커는 모스크바에 있는 칠레대사관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그 와중에 북한 김일성에게 편지를 보내 망명 의사를 전달했다.
당시 김일성은 새벽 4시에 걸려오는 김정일의 전화를 받았다. 김일성에 의하면 호네커가 평양에서 치료를 받게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급전했는데 김정일이 이를 김일성에게 바로 전달한 것이다. 김일성은 즉석에서 승인했고 대환영이라는 편지내용에 평양에 오면 치료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다 보장해줄 것이라고 답전했다. 그리고 김정일은 호네커를 평양으로 이송하기 위해 고려항공기를 모스크바로 보냈다.
북한은 대사관 채널을 통해 망명의사를 받아들인다고 전달했지만 1992년 새로 들어선 러시아 옐친 행정부는 호네커를 북한에 보내지 않고 독일로 송환했다. 호네커는 재판을 받으며 수감생활을 하던 중 병보석으로 풀려나 칠레로 망명해 생활하다가 1994년 5월에 생을 마감했다. 김일성은 호네커 부인에게 조전을 보내며 애도의 뜻을 전달했다.
북한은 동독을 사회주의의 모델, 힘의 동맹자로 여겨왔다. 김일성은 같은 분단구조 하에서 장기집권의 지도자라는 공통점을 가진 “호네케르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하면서 “나라가 망하니 사람들도 기구한 운명을 면할 수 없다”는 공포감을 표출했다.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을까?
얼마전에는 가장 가까운 절친인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세스크도 시민들의 민주화 열풍에 밀려 도망치다가 체포되었고 결국 처형되는 독재자의 말로를 경험했던 터라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김일성은 결론적으로 “고르바쵸브가 호네케르를 제국주의자들에게 팔아먹었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독일 통일 이전과 이후의 국가호칭을 달리한다. 통일이전에는 동독을 독일, 또는 민주독일이라 부르다가 통일이후부터 독일을 도이칠란드라고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