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풍(國風)확립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중대사이며 국풍이 바로 선 나라가 진정한 강국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월 22일 게재한 1면 사설에서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높이에 맞는 ‘국풍’을 확립해나가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북한 매체들이 최근 ‘국풍’을 강조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풍(國風)이란 유교 경전인 ‘사서삼경’ 중 ‘시경’ 제1편의 제목이다. 시경에 수록된 ‘지역사회의 풍속을 담은 노래 가사’들을 대표하는 표현이다. 정통성이 부족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교경전의 역사적 권위와 전통적 이미지를 차용해 자신의 콤플렉스를 보완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의 권위를 김일성·김정일에 버금가는 지도자급으로 신격화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국풍운동이 김정은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우민화((愚民化)정책임을 시사한다. 북한이 올해 ‘국가제일주의’를 새로운 국가 목표로 제시한 가운데 국풍을 통해 본격적인 ‘정상국가’ 이미지 만들기에 나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노동신문은 1월 22일 사설에서 “국풍은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발양시키기 위한 토대로 된다”며 “강국의 위상에 어울리는 국풍을 계속 창조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언급된 ‘강국의 위상’은 ‘핵 보유국’의 지위를 의미한다. 사설은 “세계가 공인하는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지위’와 국력에 상응하면서도 우리 인민의 강용한 혁명적기상과 지향에 부합되는 투쟁의 기치는 바로 우리 국가제일주의”라는 김정은의 발언을 소개했다. 북한 노동당 대내 기관지 ‘근로자’(2017년 12월호)에는 ‘전략적 지위’란 ‘핵 보유국’의 지위를 갖고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핵 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가제일주의’와 ‘국풍’ 운동을 전개함으로서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고 김정은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국풍 강조는‘김정은과 국가를 동일시 하려는 우민화(愚民化) 정책’
노동신문은 지난 1월 31일 ‘자랑스러운 주체조선의 국풍’이라는 기사에서 “령도자와 인민이 사상과 뜻을 같이하고 생사고락을 함께 해나가는 것은 주체조선의 제일가는 국풍”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국풍운동이 김정은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우민화((愚民化)정책임을 시사한다. 북한은 과거 ‘조국은 곧 수령님·장군님’이라는 표현으로 김일성·김정일을 국가와 동일시했다. 김일성·김정일의 경우 피의 숙청과 우상화의 역사가 깊어 우민화 정책이 쉽게 먹혔다.
그러나 김정은의 경우는 우상화 역사가 짧다. 김정은은 집권 7년을 넘긴 현재까지도 자신의 출생연도와 고향, 부모, 출생배경 등 기본적인 이력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현재 북한이 공개한 김정은의 이력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졸업이 전부다. 이는 북한 선전당국이 아직 김정은의 우상화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김정은이 그동안 김일성·김정일의 권위에 기대 통치를 해왔다”며 “김정은 본인의 권위는 아직 선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대북소식통은 “북한 주민들이 사석에서 김일성을 ‘수령님’으로 부르고, 김정일을 ‘장군님’으로 부르는데 아직 김정은은 함부로 호칭한다”며 “사석에서 김정은을 ‘원수님’으로 부르면 ‘너 어디 아프냐?’며 ‘이상한 사람’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4·27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이 “(냉면이 멀리 왔다)그런 말 하면 안되갔구나”라는 발언 영상이 최근 평양에 퍼지면서 주민들의 비난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대북소식통은 “귀국한 러시아 파견 근로자들을 통해 평양에 관련 영상이 퍼졌다”며 “영상을 본 주민들이 ‘지도자가 어떻게 엄숙한 회담장에서 저런 수준 없는 말을 하다니 부끄럽다’고 비난하고 있다”고 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신처럼 생각하던 지도자가 보통 사람의 언어로 하는 농담을 북한 주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김정은의 파격이 대외관계에서 효과가 있겠지만 내부에서는 신격화를 흔드는 역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풍 확립 위해 ‘국가 상징물 적극 애호해야, 김정은이 친필 사인한 ‘우리의 국기’노래 적극 선전
북한은 국풍 확립을 위해 국기(인공기),국가(애국가),국장, 국화(목란),국수(소나무),국조(참매),국견(풍산개) 등 국가의 상징들을 적극 애호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월 28일 김정은의 전용기 명칭인 ‘참매’를 국조로 부각했다. 통신은 이날 조선의 국조인 참매는 강의하고 용맹한 조선사람의 기질을 그대로 닮은 새로서 고려시대부터 기록에 나온다며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매체들은 지난 1일 1일 처음 선보인 노래 ‘우리의 국기’를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지난달 1일 공개된 악보에는 ‘노래가 대단히 좋다. 전체 인민의 감정이 담긴 훌륭한 노래 창작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하며 만족하게 생각한다. 널리 보급할 것’이란 김정은의 친필 메모가 적혀있다. 북한 매체들은 “‘국기와 나’ 이것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하나’”라며 “국기와 인민은 한 핏줄기로 이어져 운명을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는 2월 말 열리는 제2차 미북 정상회담과 3월에 열리는 최고인민회의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가와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고취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지난 1월 25일 ‘우리의 국기’라는 정론에서 “‘고난의 행군시기’ 생활상 어려움으로 하여 다른 고장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선거의 날이 오자 스스로 자기 고향의 선거구를 찾아가 찬성의 한표를 바치던 모습도 우리는 어제런듯 보고 있다”고 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은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들도 선거에 참가하면 용서해 준다는 회유책을 사용했고, 중국에 거주하던 일부 탈북자들이 돌아가 선거에 참여한바 있다”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선거에 참석하면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해 용서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대북제재 장기화로 인한 민심 이반과 권부 내 동요 다잡기 위한 포석
북한이 국풍을 강조하는 것은 대북제재 장기화로 인한 불만과 민심 이반, 권부 내 동요 등을 다잡기 위한 다목적 포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북한의 영빈관인 ‘백화원초대소’ 소장이 지난해 12월 초대소 수리 비용 조달 문제 때문에 처형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외화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북한 경제성장률’은 전년(2016년)보다 3.5% 감소해 1997년(-6.5%) 이후 최저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1월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대북제재의 결과 북한은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19억7000만달러(약 2조2000억원)의 사상 최대 무역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제재로 북한 내부의 경제상황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평양의 대북소식통은 “대북제재로 평양에 있는 종합시장들에서 거래량이 대폭 줄고 매출은 10분의 1로 감소했다”고 했다. 김정은의 관심사업인 원산-갈마해안광광건설도 건설자재 부족 등으로 공사속도에 차질을 빚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대북제재로 해외에 송출했던 인력들까지 귀국하면 정말 북한 경제는 막바지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면에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정치자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경희 사단법인 샌드연구소 대표는 “2017년 북한을 떠난 탈북자 8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북한 주민의 시장의존도는 높아졌지만 식의주(食衣住)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질적인 하락이 나타났다”며 “대북제재가 지속될 경우 북한 경제가 질적인 하락에서 양적 하락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고, 이럴 경우 내부 불만도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본주의 문화 유입을 북한식 국풍으로 차단하려는 의도
북한의 국풍 정책은 김정은이 지난해 비사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자본주의 문화유입 차단에 나선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경제전반에 시장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자본주의 경제방식은 수용하겠지만 체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자본주의 문화유입은 북한식 국풍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 조선중앙TV는 2월 초 중국을 다녀온 친선예술단의 공연 내용을 연이어 방영하고 있다. 공연에는 2013년 해체된 은하수관현악단의 서은향, 황은미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최고의 가수로 불리던 이들은 지난 2013년 처형된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과의 연루설, 악단 단원들의 부정부패 연루설 등이 제기돼 무대에서 사라졌다.
북한이 숙청됐던 가수들의 복귀 현황을 공개한 것은 이들의 대중적 인지도를 이용해 정권의 안정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고위급 탈북민 A씨는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권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이은 붕괴와 남한과의 심각한 국력차이에 위기를 느낀 북한이 김정일의 ‘비밀친솔악단’인 보천보전자악단과 왕재산경음악단의 일본 공연 내용을 공개해 주민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던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북한의 국풍운동이 1981년 전두환 정권 당시 진행된 ‘국풍81’ 운동을 모방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사회통합과 대학가의 군부 정권에 대한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국민의식을 개혁하고 전통문화를 내세운 국풍운동과 닮은 측면이 있다”며 “김정은을 신격화 하기 위해 사회통합의 새로운 에너지로 국풍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의 국풍운동은 김정은의 우상화 업무를 담당한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의 주도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북한에 많은 선전선동의 귀재들이 있지만 김정은 우상화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집안 사람 밖에 없다”며 “과거 김정일도 대학생 시절인 1960년대부터 김일성 우상화를 주도하며 권력을 장악한 바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