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의 정치적 안정성 평가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목 차 ◇
Ⅰ. 문제의 제기
Ⅱ. 김정은의 권력승계 준비 평가
Ⅲ. 김정은의 통치이념 제시 역량과 주체사상의 영향력
Ⅳ. 김정은의 당과 군부 장악력 평가
Ⅴ. 김정은의 주민 통제력 평가
Ⅵ. 맺음말
Ⅰ. 문제의 제기
지난 9월 3일의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 관람 이후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약 40일 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자 베이징을 중심으로조명록 전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황당한 소문이 나왔다. 그러나 조명록이 2010년에 이미 사망한 인물이라는 문제점이 지적되자 이번에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김정은을 연금했다는 소문이 나왔다. 그리고 김정은이 ‘뇌어혈’로 쓰러져 운신할 수 없는 상태라는 등 다른 근거 없는 소문들도 계속 확산되었다.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 정부는 김정은의 건강에 일정한 문제가 있어도 그가 통치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통치 불가능한 상태인 것 같다고 성급하게 진단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김정은의 ‘유고’에 대비한 프로그램까지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최근 김정은의 건강과 통치 문제에 대해 북한 외부세계에서 큰 혼란이 발생했는데, 이는 북한체제의 폐쇄성과 일부 전문가 및 언론의 비과학적인 분석 태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김정은이 신체의 다른 부위가 아니라 다리에 이상이 있다는 것은 북한 매체 보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미 어느 정도 확인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북한처럼 최고지도자에게 고도로 권력이 집중된 체제에서 김정은의 통치 불능 상태에서 최고인민회의 회의가 개최되어 입법 활동을 진행하고 국방위원회 간부를 교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북한체제의 특성을 제대로 안다면 김정은이 비록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도 북한의 주요 정책결정과 엘리트 변동을 통해 김정은의 건강상태가 통치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심각하거나 그가 실각 상태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김정은의 공개활동이 중단된 상태에서도 그가 제1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국방위원회의 정책국 대변인 명의로 담화가 발표되었고, 중국의 국경절을 맞이해 김정은이 시진핑 주석에게 축전을 보낸 사실이 보도되었는데 이는 김정은이 정책결정과정에 계속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2008년 말경 김정은은 북한 지도부 내에서 김정일의 후계자로 결정되어 2009년부터는 뇌혈관계 질환으로 업무 수행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김정일과 북한을 공동으로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김정일 와병 이후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치한 것은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고 김정은은 ‘수습’ 단계에서 김정일이 2011년 12월 사망하자 갑자기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정일 사후 북한이 ‘장성택 섭정 군부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2013년 12월 국가전복음모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후술하겠지만 북한에서 군부의 위상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김정은의 실제 영향력에 대한 북한 외부세계에서의 평가가 실상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고는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와 내부 자료, 고위 탈북자 증언과 국내 언론 보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김정일 생시에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어떻게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는지 먼저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김정은이 김정일 생시에 간부들에 대해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분석하기 위해 필자는 특히 북한이 공개한 ‘기록영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북한 기록영화는 노동당이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담고 있지만 이 기록영화에 등장하는 간부들과 김정은 간의 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김정은이 과거에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었고, 간부들과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본고에서는 북한 문헌 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 기록영화, 특히 그 중에서도 김정은에 대한 최초의 우상화 기록영화로 김정일 생시 그의 활동과 관련해 과거에 공개되지 않은 많은 동영상과 사진을 포함하고 있는 2012년 1월 8일 방영된 「백두의 선군혁명위업을 계승하시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정치적 안정성을 과학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이 실제적으로 주체사상과 김정은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지도를 보이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본고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거의 매년 1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해 온 북한주민의식조사 결과를 참고할 것이다. 이 조사결과는 국내 다른 기관이 매년 1,0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해온 비공개 북한주민의식조사결과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비교적 신뢰할 만한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
(중략)
Ⅵ. 맺음말
2011년 12월 김정일 사후 김정은은 북한의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에서 ‘수령’의 지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북한에서 ‘수령’의 지위는 당 규약과 헌법이 당과 국가의 최고지도자에게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권한을 넘어서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문화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무제한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 지위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1년 12월 24일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 사수 구호를 소개함으로써 김정은을 당중앙위원회의 ‘수반(首班)’으로 불렀다. 김정은이 그 때까지 당 총비서직이나 제1비서직에 공식적으로 추대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김정일의 사망과 동시에 당과 국가의 최고직책을 당연히 차지하는 ‘수령’의 지위를 물려받게 되었기 때문에 그를 당중앙위원회의 ‘수반(首班)’으로 부른 것이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공식적 권력승계를 완료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이미 2009년부터 군대와 공안기관들을 확고하게 장악한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김정일 생시에 김정일의 공개활동에 동행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지도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김정은은 김정일 생시에 ‘수령의 후계자’로서 모든 간부들에 대해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김정일과 한 손으로 악수할 정도로 김정일과 거의 대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김정일이 자신의 사후에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승계할 수 있도록 김정은의 지위를 거의 자신과 같은 ‘절대적’ 수준으로 높여준 결과였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전까지만 해도 김정은은 주체사상과 관련해 그 어떠한 새로운 논리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2년 4월 공식적으로 당과 국가기구의 최고직책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정식화하고 이후 ‘김정일애국주의’라는 새로운 통치담론을 제시하는 등 뒤늦게나마 ‘수령의 후계자’로서 이데올로기적 해석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3년 탈북자 149명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주체사상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응답이 57%로 전년도에 2012년 탈북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의 동일한 응답 51.9%에 비해 5.9% 상승한 수치가 나왔다. 이 같은 사실은 주체사상이 북한 주민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김정일애국주의’라는 새로운 통치담론을 제시하면서 과거 김정일에 의해 교조화되고 화석화(化石化)되었던 주체사상은 간부와 주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른바 ‘강성국가’ 건설에 동원하는 논리를 가지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일 사후 당과 군부의 핵심 인사들 상당수가 김정일의 측근에서 김정은의 측근으로 교체됨에 따라 당과 군대에 대한 김정은의 장악력은 더욱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 전문가의 지적처럼 2013년 12월 장성택의 숙청은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높여준 것이 아니라 북한 지도부 내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분파’ 세력이 사라지게 함으로써 김정은의 절대독재권력이 더욱 공고화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정은의 최대 후견인이었던 고모 김경희도 건강이 악화되면서 2014년에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고 그 자리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서서히 채워감으로써 김정은의 친정체제는 더욱 강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 군부에서는 항일 빨치산 2세를 대표하는 최룡해가 2012년 4월 총정치국장직에 임명된 후 총참모장이 리영호 → 현영철 → 김격식 → 리영길로 바뀌었다. 그리고 인민무력부장도 김영춘 → 김정각 → 김격식 → 장정남 → 현영철로 교체되었다. 그 과정에서 군부에 일정한 동요가 있었겠지만 과거 김정일의 군부 핵심 측근들이 상대적으로 보다 젊은 김정은의 군부 측근들로 교체되어 군 수뇌부에 대한 김정은의 장악력이 더욱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 당 엘리트인 최룡해는 2012년 4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약 2년간 인민군 총정치국장직을 맡아 군대에 대한 당과 ‘수령(김정은)’의 통제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최룡해의 후임으로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군사 담당 제1부부장을 맡고 있던 황병서가 총정치국장직에 임명됨으로서 군대에 대한 당의 통제는 앞으로도 큰 변화 없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일 사후 주민들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어 신규 탈북자의 수가 현저하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지도자나 정부에 대한 비판행위(낙서, 삐라 등)도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주민들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근로단체의 생활총화 출석률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주민들에 대한 김정은의 통제력도 보다 강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주민들의 50% 이상이 김정일을 지지한다고 본다는 응답은 2008년에 49.3%, 2009년에 53.3%, 2011년에는 55.7%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여 왔다. 그런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3년에 탈북한 북한이탈주민 149명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북한 주민들의 50% 이상이 김정은을 지지하고 있다고 본다는 응답은 64.4%를 차지해 전년도에 2012년 탈북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의 동일한 응답 61.7%에 비해 2.7% 약간 상승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0년과 2011년에 입국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2011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북한 주민들의 50% 이상이 김정일을 지지하고 있다고 본다는 응답이 55.7%였던 점을 고려하면, 과거 김정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지지도보다 최근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지지도가 8.7%나 높게 나오고 있다.
이처럼 김정일 사후 김정은이 북한 지도부 내에서 ‘수령’의 지위를 공고히 했고, 북한에 권력의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군주제적(君主制的)인 정치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북한체제의 안정성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김정은의 초고도비만과 과체중 그리고 당뇨 등으로 미래에 건강이 더욱 심각하게 악화되어 그의 공개활동 중단이 장기화되고 업무 수행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면 북한 지도부 내에 동요가 발생하고 파워 엘리트에 대한 김정은의 통제력이 이완되며 간부들이 ‘면종복배(面從腹背)’하는 현상이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은의 건강이상은 북한 지도부 내의 불안감을 확산시켜 외부세계에서의 북한급변사태론, 성급한 통일 논의, 대북 전단 살포 등에 대해 더욱 과민하게 반응하게 하고, 체제결속을 위해 장거리로켓 발사나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대외적으로 강경한 정책을 추구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김정은 이후’ 대비 차원에서 북한 파워 엘리트들 중에 외부세계와의 협력에 우호적인 인사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도록 전략적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