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을 통해 본 ‘미국의 대북정책과 의사결정 과정’을 주제로 지난 7월 25일 ‘2002년 7월 샌드 한반도 정세분석세미나’가 열렸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이 발제를 맡았다. 남 교수는 존 볼턴에 대해 북핵 외교에 대해 수십년 간의 경험으로 실패로 여기고 있던 인물로 정권 초부터 김정은을 만나고자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환상과 열망에 가슴이 답답해 했다고 말했다.
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2018년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만나자는 김정은의 초청장을 건넸고, 트럼프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이를 수용했다고 한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4월 12일 나는 한국 측의 상대인 정의용을 만났다. 정 실장은 나중에 김정은에게 먼저 그런 초대를 하라고 제안한 것은 자신이었음을 거의(all but) 시인했다”고 밝혔다.
볼턴은 또 “모든 외교적 춤판(fandango)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이는 김정은이나 우리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의제에 더 연관된 것”이라고 했다. 남성욱 교수는 “정 실장이(볼턴의 회고록에 대해)즉각적인 왜곡 반응을 보인 건 볼턴 전 보좌관이 “(북미 회담은) 한국의 창조물이었다”(South Korea’s creation)라고 언급한 부분 때문”이라며 “김정은과 트럼프는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측이 일종의 '이중 플레이'를 했고 여기에 미국이 걸려 들어갔다는 뉘앙스”라고 평가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미 3자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는 당초 회담을 판문점에서 한 뒤 후속적으로 남북미 3자회담을 갖자고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김정은이 싱가포르를 선호한다고 하자 물러섰다”고도 했다. 또 “2018년 5월 22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남북미 3자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에 동참하기를 원했고, 심지어 6.11 회담 전날까지 오고 싶어 했다. 문 대통령이 ’19.6월말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 때처럼 이번에도 사진 찍기 행사에 끼어들기를 원했다”며 “이런 구상을 무산시킨 것은 북한이었다. 김영철은 6월 1일 백악관을 방문해 “이건 북미회담”이라며, “남한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했다.
볼턴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7월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했지만 김정은을 만나지 못하고 돌와왔으며 트럼프에게 전화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고 말했고, 트럼프는 “신뢰구축은 개소리라며 화를 냈다”고도 했다. 이후 북한은 폼페이오가 평양을 출발한 후 언론을 통해 미국은 ‘일방적이며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를 했다’고 비난했다. 볼턴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직전 준비회의에서 ‘예기치 못한 양보를 막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이 레이캬비크 회담(1986년 고르바초프)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영상을 트럼프에게 보여주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상을 본 뒤 “내가 유리한 입장이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회담장을 걸어 나갈 수 있다고 말해 크게 안도했다”고 했다.
볼턴은 또 하노이 회담에 앞서 2월 24일 하노이로 가는 도중 급유를 위해 기착한 앵커리지에서 북핵 협상 담당자인 비건 대표가 만든 합의문 초안을 보이콧했다. 볼턴은 앨리스 후커 보좌관으로부터 초안을 받고 “트럼프의 사전 양보(prior concessions)만 열거해 놓고 대가로 북한이 만든 것 같은(it read as if drafted by North Korea) 모호한 비핵화 성명만 넣은 것”이라고 혹평했다. “폼페이오가 왜 이런 문안을 허락했 는지 완전 미스터리이며, 펜스 부통령·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밀러 정책보좌관에게 연락해 채택하지 못하도록 사전 작업까지 했다”고 했다.
볼턴은 “(비건 대표의 하노이 이전 스탠포드대 연설시 ‘점진적 접근’ 밝힌 데 대해) 국무부 협상팀이 합의에 대한 열의와 홍보에 너무 도취되어 통제 불능에 빠졌다”고 했다. 이어 2.28 하노이 회담이 무산으로 결론 나기 전날 트럼프 대통령도 “비건의 문안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치다”라며 실무협상팀 초안을 거부했다고 볼턴은 밝혔다. 결국 트럼프는 대북제재를 약화시킬 우려 때문에 스몰딜을 거부했고, 빅딜은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이클 코언 변호사 청문회를 보느라 밤을 새운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스몰딜과 걸어 나가는 것 중 뭐가 더 기사거리가 되겠느냐”고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영변외 추가로 내놓을 것이 없는지 묻는 트럼프와 영변이 북한에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말하는 김정은 간에 같은 문답이 반복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폐기 외 추가 제안이 있는지 물었고, 김정은에게 ‘부분적 제재 완화’도 시사했지만 김정은은 이 제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트럼프는 “쉴 동안에 뭘 준비했느냐”고 했다. 김정은은 “전임자들이 일찍이 내어본 적이 없는 제안을 갖고 하노이까지 멀리 왔는데도 트럼프가 만족하지 않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가 한동안 진행되다가 트럼프가 볼턴에게 ‘비핵화의 정의(定義)’에 대하여 정리한 것과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에 맞게 될 밝은 장래에 대하여 정리한 문서를 요구하여 이를 김정은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김정은에게 “평양까지 비행기로 태워다주겠다”고 했고, 김정은은 웃으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는 계속해서 “그렇게 하면 좋은 그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영변 핵시설 폐기 이외에 추가할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김정은은 영변 폐기가 북한으로선 얼마나 큰 ‘양보’인지, 미국 언론이 얼마나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를 다시 설명했다.
트럼프는 “제재를 완전히 해제해달라고 하지 말고 몇 퍼센트만 해제해달라는 식으로 수 정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볼턴은 “이 순간이 가장 위험하였다”(This was beyond doubt the worst moment of the meeting)고 썼다. 만약 김정은이 “좋다(yes)”면서 응했다면 합의가 있었을 것(had a deal)이고 그것은 미국 측에 재앙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김정은은 트럼프의 말에 얻는게 없다고 불평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중간에 장거리미사일 제거를 할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으며, 볼턴은 이에 “북한 핵·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전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고부터 필요하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정은은 “한걸음씩 가면 궁극적으로 전체 그림(comprehensive picture)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안보에 대한 어떤 법률적 보장도 얻지 못했다”면서 “美 군함이 북한 영해에 진입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 고도 질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만약 영변-제재해제 안을 받아들일 경우미국에서 정치적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며 “자신은 대선에 패배할 수도 있다”고도 말하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정은은 즉각 “트럼프를 정치적으로 약화시키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가 회담 도중 저녁을 취소하고 북한에 비행기로 데려다 주는 게 어떤지를 묻자, 김정은은 웃으며 ‘그럴 순 없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통일 전망이나 북중관계를 묻자, 김정은은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김정은은 계속 공동성명을 제안하면서 두 지도자 사이의 벽을 느낀다고 불평했다. 절망감(a sense of despair)을 느낀다는 표현도 했다. 볼턴은 이런 감성적 호소에 트럼프가 넘어갈까 걱정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하였고 모두가 웃었다. 김정은은 다시 ‘영변 보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했다. 볼턴은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 이후 북한이 여러차례 비핵화를 약속했던 점을 지적했다.
트럼프는 김정은 영변 폐기의 대가로 제재를 해제해달라고 하는 게 합의의 장애물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제안이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끄럽다(shame)”고 했다. 김정은은 마지막까지 합의가 없더라도 ‘하노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를 원했지만, 이마저도 없이 2차 회담은 결렬로 막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노딜‘ 이후 한달쯤 지난 뒤부터 하노이에서 자신이 너무 강하게 나갔던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볼턴은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전쟁에 10센트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대북제재를 어겨 美 재무부 재재를 받고 있는 中 회사 2곳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고 싶다고도 했다. 볼턴과 멀베이니 비서실장은 트럼프를 적극 만류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 트윗에 대해 협상하려는 “단 한명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기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해했던 샌더스 대변인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제재는 불필요했다”고 답변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 볼턴은, 하노이 회담 직후 정의용 실장과 이야기한 내용을 소개하였다. 정 실장은 김정은이 플랜B 없이 온 것에 놀랐다. 정 실장은 볼턴에게 미국이 ‘행동 대 행동’ 전술에 넘어가지 않은 것은 잘했지만 영변 폐기는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로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각을 전했다. 볼턴은 “그런 문재인(대통령)의 생각은 ‘정신분열적(schizophrenic)’”이라고 폄하했다. 영변 폐기와 제재 해제를 맞바꾸려는 전술이 ‘행동 대 행동’인데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볼턴은 또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세 번째 트럼프-김정은 회담을 제안하였다. 장소로는 판문점이나 미국 선박이 좋겠다고 했다”며 “트럼프는 조는 듯하였는데 문재인의 독백을 차단하고 ‘문재인의 노력은 감사하지만 두 번이나 회담이 실패하는 것은 곤란하다. 한 번으로 족하다. 그러니 회담 전에 북한이 핵무기를 없앤다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요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볼턴의 회고록의 말미에서 “우리는 김정은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다”며 “김정은이 미국 대선 기간에 트럼프를 유인하여(entice) 전임 대통령들이 큰 실수를 했던 ‘나쁜 합의’에 도달하게 할지? 혹은 트럼프와 합의를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며 순종적인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낫다고 결론을 내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완전한 핵능력을 보유하기 위한 북한의 행보 (Trajectory)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4번에 걸친 행정부들과 같이 향후 미국 행정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확산을 저지하는데 실패해 왔다”며 “향후 미국 행정부는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평양 정권과 조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핵위협이 임박하기 전에 핵무기를 중지시킬 마지막 기회를 갖기를 희망한다”고 했다.